억울하다고 외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래도 뭔가 있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저는 직접 그 억울한 위치에 놓여보고 나서야, 그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 편견인지 알게 됐습니다. 영화 끝장수사는 바로 그 지점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무죄추정과 자백강요, 현실에서도 벌어지는 일
끝장수사는 일본의 실제 억울한 사건 세 가지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습니다. 판결 선고 직전 진범이 자백해 석방된 우와지마 사건, 복역 중 DNA 재감정으로 무죄가 밝혀진 아시카가 사건, 만기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뒤에야 진범이 드러난 히미 사건이 그것입니다. 세 사건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수사 초기에 무죄추정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무죄추정원칙이란 형사 피의자는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로 취급받아야 한다는 형사법의 기본 원리입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27조 4항에도 명시된 권리이지만, 영화 속 장면처럼 수사 현장에서는 이 원칙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보게 됩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영화에서 억울하게 갇힌 인물은 이렇게 말합니다. 3일 동안 잠도 안 재우고, 같은 말을 100번 넘게 시키고, 아이 학교까지 찾아가겠다는 협박까지 들었다고요. 이게 픽션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수사 심리학에서 실제로 연구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허위자백(false confession)이란 말 그대로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진술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장시간 수면 박탈, 반복적 심문, 가족을 향한 압박은 허위자백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학계에 보고되어 있습니다(출처: 대검찰청).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대학 때 표절 의심을 받았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교수님이 이미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린 채로 부르셨던 그 분위기가 고스란히 겹쳐졌습니다. 저도 그때 아니라고 말하면 말할수록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아 입이 잘 열리지 않았습니다. 수사실에서 극한 압박을 받는 상황과 비교하면 비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 심리적 구조는 정확히 같았습니다. 의심을 받기 시작하면, 아니라는 증거를 내가 먼저 쌓아가야 한다는 그 피로감 말입니다.
끝장수사가 특히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것은 이 구조를 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시골로 좌천된 베테랑 형사 서제혁과 인터넷 내기로 경찰이 된 금수저 인플루언서 김중호라는 조합은, 버디 무비 장르의 공식인 서로 다른 두 인물이 갈등하며 사건을 풀어가는 구조를 충실히 따릅니다. 버디 무비(buddy movie)란 성격이나 배경이 전혀 다른 두 인물이 한 팀이 되어 목표를 달성하는 서사 형식을 말합니다. 가벼운 웃음이 오히려 수사 현실의 불편한 진실을 더 오래 남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억울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화와 제 경험을 통해 정리한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감정적 반응보다 객관적 근거를 먼저 정리할 것
- 의심받는 부분을 구체적 사실로 하나씩 반박할 것
- 진술 일관성을 유지하고, 압박 상황에서 섣불리 인정하지 않을 것
책임의 범위, 어디까지가 내 잘못인가
영화의 또 다른 축은 잘못 잡은 범인을 덮으려는 내부 구조입니다. 서울 강남 경찰서는 탁구장 구석에 합동 수사 공간을 배정하고, 검사는 회유를 시도하며, 형사끼리 직접 충돌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개인의 악의가 아니라 조직 방어 본능, 즉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작동입니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이 이미 내린 결론을 지지하는 정보만 수집하고 반대 증거는 무시하거나 최소화하는 인지적 경향을 말합니다.
제가 표절 의심을 받았을 때도 비슷한 구조가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보고서 결과물만 보고 판단을 굳히셨고, 제가 설명을 드릴수록 오히려 더 의심스러워 보이는 상황이 됐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억울한 사람이 더 열심히 해명할수록 오히려 더 의심받는다는 역설은, 영화 속 억울하게 갇힌 인물이 결백을 주장하는 장면과 완전히 겹쳐집니다.
그런데 저는 그 경험을 돌아보면서 한 가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팀장으로서 최종 제출 전에 보고서 전체를 검토하지 않은 것은 분명 저의 책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직접 표절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이름이 걸린 결과물이라면 끝까지 확인해야 한다는 의무를 소홀히 했습니다. 이처럼 공동 책임 구조에서 팀장 혹은 책임자 위치에 있는 사람은 대리 책임(vicarious liability)을 지게 됩니다. 대리 책임이란 직접 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관리 감독의 지위에 있던 자가 해당 결과에 대해 법적·도의적 책임을 부담하는 개념입니다.
영화의 서제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골로 좌전됐다는 억울함, 감찰까지 받게 된 분노 속에서도 그는 수사를 멈추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억울함은 빠져나올 구멍을 찾는 것보다, 자신이 놓쳤던 부분을 직시하는 것에서 조금씩 해소됩니다. 억울한 감정과 자기 책임의 인정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 이 영화는 그걸 코미디라는 포장 안에 꽤 솔직하게 담아냈습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것입니다. 시스템이 틀렸을 때, 그 안에 있는 개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서제혁은 좌천된 형사고, 김중호는 내기로 경찰이 된 아마추어입니다. 그럼에도 이 두 사람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억울하게 갇힌 사람은 끝내 감옥에 남았을 것입니다.
억울한 상황에 놓였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증거를 차곡차곡 쌓는 일이라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배웠습니다. 끝장수사를 보면서 그 교훈이 다시 한번 선명해졌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가볍게 웃으면서도 꽤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4월 개봉작이니 극장에서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livewiki.com/ko/content/korean-crime-movie-new-sweaty